사이트맵 | ENGLISH | 모바일

현지 통신원글

Live stories from Haniedu students  


제목[12기 - Missouri임지수/글5]
작성자임지수 등록일2005.12.22 18:17 조회수6,840
진짜 겨울이에요. 추워도 너무 추운 요즘은 긴 팔 티셔츠 위에 두꺼운 후드티를 입고 양말을 신고 머플러까지 두르고 잠자리에 듭니다. 집 사방팔방을 둘러싸고 있던 나무들이 털어놓은 낙엽들이 온 마당을 덮었어요. 저번 통신원 글에서 너무나 많은 오타를 발견했는데 아주 그냥 민망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적은 것이라 실수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이번 글은 창 밖 하얗게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차분히 적어내려 갈게요.

Research Paper

11월 한 달은 English시간의 Research paper를 완성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Research paper는 미국 문서 작성법인 MLA법에 따라 자기가 정한 주제에 대해 A4용지 4~5장 용량의 글을 쓰는 건데요, 그냥 제 생각을 쓰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의 인용이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형식이고, 그 인용법도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죠. 처음엔 저도 흥미로운 내용에 대해 써보려 했습니다. 제가 처음 제출한 topic은 ‘Effect of smile’이었어요. 웃음이 건강에 좋다는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정보를 찾아보니 이 내용이 저 내용이고 저 내용이 이 내용이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너무나도 stereotyped한 주제, 대기오염에 대해 쓰기로 했습니다. 인터넷, 도서관을 뒤져보면 넘치고 넘치는 정보들이지만 주관적이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좋은 정보를 찾는 것 또한 제겐 힘든 일이었습니다. 정보를 찾으며 EPA(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에 관한 기사나 사이트는 다 들어가봤으리라 장담합니다. 이번 second quarter 성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압박이 되었구요. 결국 Thanksgiving 여행때까지 노트북을 들고 가서 작업을 했습니다. 너무 힘든데 시간은 제 사정을 봐주지도 않고 마구 흘렀고 12월 1일, 5장 반의 Research paper를 제출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140점 만점에 140점을 받았습니다. 푸 하 하 하 하 하. 140점을 받은 사람이 전교에서 두명이니까 이정도면 쫌 했다고 자랑해도 되겠죠? 처음으로 English과목에서 A를 받아 봤어요. 그래서 11월에는 점심 급식을 2번 밖에 안먹었습니다. 자나깨나 그 생각 뿐이었어요. 이젠 세상에 못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적어도 세 배는 더 끈질기게 선생님께 질문하고 매일 수정해서 읽어봐달라고 부탁드린 제가 너무 귀찮으셨을텐데 매번 격려해주시고 친절하게 도움을 주신데다 후한 점수까지 주신 Ms.Gray 선생님께 너무 감사해요.

그렇게 바쁜 11월이었는데도 여행을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한 번은 Thanksgiving Day를 위해 Michigan에 한 번은 상담선생님과 함께 Missouri의 주도인 Jefferson city에 갔다 왔습니다. 너무너무 재밌는 날들이었죠. 숲 속에 갇혀 살다가 조금 더 넓은 미국을 보니 입을 매번 입을 다 물지 못했어요. 들려드릴게요 ^ ^

Thanksgiving Day -Trip to Michigan

Michigan주는 제가 살고 있는 Missouri주의 북서쪽에 있는 호수로 둘러싸여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호스트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 그 분들 자녀들이 살고 있는 곳이에요. Thanksgiving Day를 맞아 1주일간 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처음엔 너무 좋았지만 Research paper 걱정에 도저히 가도 즐거울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Thanksgiving day방학을 제외하고 3일을 더 결석하게 되는데 그 숙제를 생각하니 도저히 감당이 안됐구요. 그래서 Thanksgiving day 방학동안 친구 집에서 묵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결국 P.I.E 기관에서 반대를 했고 머릿속과 마음속에 걱정과 불안만 안고 여행을 갔습니다. Research paper를 끝낸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떻게 그 여행을 안 갈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그 땐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 생각 뿐이었어요. 차로 13시간 걸리는 거리이기 때문에 일요일 새벽 3시에 출발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미시시피강을 지날 때는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밤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출발한지 5시간정도가 지나자 할아버지께서 잠이 온다시며 수다를 떨자고 하셨어요. 사실 말씀을 들어드리는 수준이었는데 농사 이야기, 땅 값 이야기 등 꽤 재밌는 얘기들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미시시피강을 지나 Illinois주를 통과하게 됐는데 말로만 듣던 flat country를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됐어요. 나무도 몇 없는 완전평면. 경사 하나, 정확히 굴곡하나 없는 직선도로가 끝없이 펼쳐졌습니다.



↑ 완전평면 Illinois주를 지나면서 차 안에서 찍은 사진.

Illinois주를 달리며 Chicago를 지나게 됐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3층 이상의 빌딩을 Chicago를 지나며 차 안에서 처음 봤습니다. 영화에서만 보던 호화로운 저택가에 고층빌딩들,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표현이 마음에 안들지만 ‘아, 여기가 미국 맞구나.’ 싶더라구요. 시카고를 통과해 Indiana주에 이르면서 조금씩 언덕이 생기더니 Michigan주 톨게이트에 도착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할머니의 딸이 살고 있는 집에 묵게 됐는데 13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에는 할머니를 꼭 닮은 큰 딸 Roxanne과 손자 Steve, Nolan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들 저희 집 거실에 걸린 사진으로 매일 보던 얼굴이라 처음 보는데도 낯설지 않더라구요. 저는 일주일동안 Nolan과 2층 침대를 나눠 쓰며 생활했습니다. Nolan은 7살 꼬맹이답지 않게 말이나 행동이 영 어른스러운 아이였어요. 여자친구가 있는데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나 뭐라나..



↑ 귀여운 Nolan / 카메라를 들이대니까 자기 특기를 보여주겠다며 저렇게 티셔츠에 온 몸을 집어 넣던..ㅋㅋ

도착 한 날엔 피곤한 몸으로 일찍 잠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할머니의 brother-in-law, 그러니까 할머니 언니의 남편 장례식에 가게 됐어요. 미국의 funeral은 그리 슬픈 곳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다른 분위기에 놀랐는데요. 장례식장은 화려한 꽃들로 꾸며져 있었고 장례식장 맨 앞에는 문이 열려있는 관이 놓여져 있었어요. 설마하고 가까이 가 보니 말끔한 옷을 입은 아저씨께서 편안히 누워 계시더라구요. 장례식이 시작되고 사회자가 나오더니, 아저씨의 삶에 대한 영상을 틀어주었습니다. 아주 어렸을적 사진부터 가장 최근의 사진까지 쭉 설명과 함께 듣게 되었는데 저처럼 생전 모르는 사람이 장례식에 왔더라도 그 분의 죽음에대해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도록 말이죠. 장례식 도중에 크게 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구요 정말 괜찮다 싶었던 것은 아저씨 주위 사람들이 나와 사람들 앞에서 그 분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어요.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 하시는 분도, 재밌는 얘기로 장례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드시는 분도 계셨어요. 부시 대통령이 어느 정치인의 장례식에서 센스 있는 한마디로 문상객들을 웃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말이 되는 소린가 싶었는데 가능한 일이었어요.



↑ 장례식장 입구에서 받은 팸플릿

Michigan주가 추운건 알고 있었지만 추워도 너무 춥다 싶더니 이틀 뒤 눈이 내렸습니다. 제가 부산에 살 때에 일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하는 눈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저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는데 Michigan가족들에겐 매일 보는 눈이니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단 한명, Nolan을 제외하고. Nolan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저녁을 먹고 에너지를 보충한 뒤 바로 마당에 나가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아주. 아주아주 스타일리쉬하게.



↑ Nolan과 함께 만든 눈사람. 팔이 포인트입니다.

눈사람을 다 만들고 그 날 저녁 6시쯤 steve가 같이 쇼핑을 가겠냐고 물어봤어요. 여자친구가 제 얘기를 듣고 보고 싶어한다고. steve는 20살인데 여자친구는 저보다 한살 어린 친구였어요. Steve의 여자친구 Samantha, 그 친구 Jennifer와 함께 mall에 가서 밥도 먹고 충동구매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고른 옷 중에 하나가 10달러 세일된 39달러짜리 스웨터였어요. 분명히 테그에는 빨간 줄 그어진 49달러 아래 39달러라고 적혀있었는데 제가 20달러짜리 두장을 내니까 20달러 한 장을 받더니 15달러랑 quarter을 거슬러주는거에요. 아마 계산할 때 코드를 잘못 찍었겠죠. 40달러짜리를 5달러에 샀습니다. 하 하 하.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다들 “Big Deal~!!”하며 하이파이브를 했습니다. 완전 땡잡았습니다. 카메라를 안들고가서 사진 한 장 못찍었지만 진짜 착한 친구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Thanksgiving Day였죠. Roxanne 아줌마께서 한국에도 Thanksgiving Day가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추석이라고 부른다고 가르쳐 드리니까 다들 발음하는걸 재밌어 하셨어요.(‘추석’의 석 짜가 suck으로 발음되니까.ㅋ) 동그랗게 모여 앉아 손을 잡고 기도를 한 뒤 생각보단 간단했지만 갖가지 요리와 칠면조, 그리고 할머니의 최고요리인 Apple pie까지 먹었습니다. 중학교 영어책에 있던 Thanksgivingday 식사그림에서 본 그 장면 그대로였어요. 아침에 Nolan과 놀아주느라 식사준비를 돕지 못해 커다란 칠면조의 발가벗은 몸은 보지 못했지만 그 부드러운 맛만은 생생히 기억합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Nolan이 나무 막대기 두 개를 들고 오더니 “Indian Talking Stick!”하고 외쳤습니다. Indian talking stick은 옛날 Indian들의 주된 놀이감이었는데요 그 막대기를 가장 먼저 든 사람을 시작으로 막대기를 돌려가며 릴레이 식으로 재밌는 이야기를 지어내야 하는 놀이었데요. Roxanne은 자신이 인디언의 후손이라는걸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steve가 어렸을 때도, 그리고 Nolan에게도 매년 Thankgsgiving때마다 Indian talking stick을 만들게 하신데요.





↑ Thanksgiving dish / Indian Talking stick

전날 내리기 시작한 눈이 Thanksgiving day엔 더욱 하얗게 함박눈으로 내렸습니다. 덕분에 조용히 내리는 눈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중간중간 특선영화를 보며, Thanksgiving 하루는 Research paper 작업에 매진을 했습니다. Thanksgiviing day 다음날은 여느 공휴일이 그렇듯 전국민의 쇼핑day였습니다. Black Friday라고 부르던데요, holiday 후에는 어딜가든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다보니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 쉽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해요. 이번에도 사망자가 한 명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예상대로 겁나게 많은 사람들이 어딜 가나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런 날에는 모든 곳이 엄청나게 세일을 하는데요 저는 Vans 운동화를 39달러에 샀습니다. 한국에서 Vans를 39000원에 샀다고 하면 완전 대박이잖아요. 낭비 없이 필요한 것만 샀던 기분 좋은 쇼핑이었어요.(^ ^)



↑ 새하얗게 변한 집 앞에서

하루종일 쇼핑을 하고는 마지막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분들 댁에 다녀왔습니다. 할아버지의 삼촌 댁, 형님 댁, 할머니의 작은 딸 집, 할머니의 여섯 자매분들이 모인 자리도 다녀오고 할아버지 딸의 집에도 가보았습니다. 호스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재혼을 하셨는데 할머니 손자와 할아버지 큰딸의 나이가 같아요. 할아버지 딸 carrie언니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중인데 19살 때 반듯한 직업을 가진 25살 남편과 결혼을 했답니다. 그래서 젊은 부부인데도 꽤 좋은 집에서 살고 있었어요. 사실은 carrie언니가 9월 중에 저희 집을 방문 했었을때 제가 너무 피곤해서 따뜻하게 반기지 못한 것 같아 맘에 걸렸는데 이번 기회에 거실청소도 돕고 애교도 떨면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 손자 Josh와 할머니 / 할아버지를 꼭 닮은 carrie언니와 남편

정말 즐겁기만한 시간이었지만 한가지 불편했던점은 집 안에서 기르는 두 마리의 고양이들이었어요. 하루는 잠을 자다가 깜깜한 새벽에 깨게 됐는데 누가 자꾸 머리를 치는 느낌이었어요. 손으로 만져보니 물컹한 것이 100% 동물인 것을 느끼고는 바로 2층침대에서 뛰어 내려와 불을 켰습니다. 이건 무슨 고양이인지 너구리인지 알 수 없도록 띵띵하고 쌔까만 고양이가 “뭘 봐.” 하듯이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진짜 소리라도 지를뻔 했어요. 도착한 첫 날이어서 고양이를 기르는지 몰랐거든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턱 밑과 손등에 딱지가 앉도록 할퀴어 놨더라구요. 그 사실을 Roxanne 아줌마께 말씀드리니 침대의 2층은 원래 고양이들이 자던 곳이고 Nolan은 그 고양이들을 양쪽에 안고 잔다고 하셨어요. 미국엔 고양이를 키우는 가정이 꽤 많은데 집 밖에서 뒹굴다 온 고양이들을 어떻게 껴안고 잘 수 있는지 신기했습니다.





↑ 그나마 귀여웠던 Hidy / 저를 할퀸 다음날부터 집안 출입금지를 당한 까만 고양이

토요일 날 아침 일찍 짐을 챙기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1주일이나 한 집에서 지내다보니 정이 들어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현관에서 인사를 할 때, 항상 어른스러워서 친구같았던 Nolan은 “I had fun with you, I will do miss you.(재밌었어. 진짜 보고싶을거야.)” 라고 하더니 부끄럽게 웃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또다시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중간중간 내려 배를 채우며 저희 집, 숲 속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차로 13시간을 달려야하는 거리의 친척들을 일년에도 세네번 방문한다시는데, 제주도에 있는 친척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던 외삼촌댁이나 삼촌댁에 나는 몇 번이나 다녀왔나 반성이 됐습니다.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자주 인사 드리러 갈거에요.

Jefferson City !!!

Research Paper 마무리로 정신 없던 11월 30일 아침 일찍 Library에서 작업하고 있는 저에게 상담선생님께서 인사를 하시며 다가오셨습니다. 제가 작업하는걸 가만히 지켜보시더니 이번 주말에 선생님께서 Jefferson city에 있는 딸 집에 다녀오려는데 함께 가고 싶은지를 물어보시는 거에요. 당연히 가죠 왜 안가겠어요.ㅜㅜ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지요. 시간이 날 때면 상담실에 들어가 선생님과 이야기 하면서 혼자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면서 힘들 때마다 선생님은 항상 제게 큰 힘이 되주셨어요. Research paper 점수를 받고 쉬는 시간에 바로 달려가 자랑을 했더니 저보다 더 좋아하시면서 안아주신 분이세요. 제가 이 미국 땅에서 가장 신뢰하고 의지할수 있는 분이시구요. 호스트 할머니 할아버지께선 워낙 바쁘시고 어디 다니는걸 원래 안좋아하셔서 옆 동네에 가는 것조차 저에겐 여행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Jefferson city라니 날아갈뻔 했죠. (Jefferson city는 Missouri주의 주도로서, 미국의 2대 대통령인 Thomas Jefferson이 나폴레옹으로부터 껌 값으로 거대한 땅을 사들여 미국 국토를 두 배로 만든 Louisiana Purchase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에요.) 말로만 듣던 그 곳, 백과사전에서 봤던 그 곳을 가게 됐답니다. Research paper를 제출한 다음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교를 마치자마자 Legerwood 선생님과 J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3시간 반동안 운전을 하시면서 참 많은 얘기를 해주셨어요. 예상보다 한국에 대해 특히 남북문제에 대해 잘 알고 계셔서 재밌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미군 이야기를 하다가 효순이 미순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거의 고자질하듯 말씀드렸어요. 당연히 모르시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가끔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지기까지 했지만, 선생님께선 언제나 그랬듯 제가 어떤 얘기를 하든 경청해주셨습니다. 달리고 달리다보니 한국 저희 집 베란다에서 보던 그 야경이 펼쳐졌습니다. 얼마 만에 느끼는 도시의 활기인지! Jefferson city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래도 도시이다 보니 개인집 건물들도 확연히 다르게 크고 화려하더라구요. 끊임없이 감탄사를 토해내는 저를 보시며 선생님께선 예상 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생님 어렸을 때는 도시라 해도 이렇게 큰 집들이 많진 않았어. 30~40년 전부터 우리나라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집들이 커지고, 아니 거대해지고, 사람들 간에 거리도 멀어지더라. 가난했던 시절에는 좁은 거실에서 함께 TV를 볼 수 있었는데 갓난아기들까지 따로 제 방이 있으니 가족들이 함께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사라졌어. 시리얼을 먹을때도 시리얼 그릇을 자기 방에 들고 가서 먹고 티비를 볼 때도 자기 방에서 혼자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개인적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지.” 하시며 다른 나라사람들도 미국인들을 개인적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는데 그저 웃기만 했지요. 개인주의 문화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선생님께서도 Jefferson city에 사셨답니다. 선생님 남편분께선 지금 농장일을 하시지만 의회에 계셨던 분이래요. 뿐만 아니라 선생님 따님도 의회 의원이시고 오빠께서는 Senate(상원의회)에 계신대요. 우와 대단하죠 정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폴폴나는 거리의 따뜻한 카페에서 선생님 딸 Betsy를 만났습니다. 당장 내일이 크리스마스인 것처럼 예쁜 조명들로 꾸며진 건물들과 여기저기 구경거리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추운 날의 온도를 높이는 듯 했어요. 따뜻한 코코아를 손에 들고 화려한 거리를 다니며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도 사고 재밌는 구경도 많이많이 했습니다. 그 추운날에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고 춤 추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어 사진으로 못담은 것이 아쉬워요.



↑ Jefferson city의 구경거리가 천지였던 그 거리


↑산타할아버지와 면담 중이던 아이


↑은행 안에서 멋진 공연을 했던 합창단

저녁을 사먹고 도착한 Betsy의 집은 basement까지 합쳐 7개의 방이 있는 예쁜 집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내 집을 마련한다면 꼭 이렇게 만들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멋진 곳이었어요. 인테리어 잡지에서나 봤을 핑크빛 방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엔 Governor mention을 가보았습니다. Governor mention은 Missouri주 의회의 대표 governor가 사는 곳으로 의회 사람들의 사교회장으로 쓰이는 곳이었어요. 아침에 Betsy의 딸이 너무 많이 울어서 정작 가야할 Betsy는 함께 가지 못했지만 legerwood선생님도 출입이 가능하셨고 저는 선생님 빽으로 들어갈수 있었죠. 건물 밖에서 볼 땐 전혀 몰랐는데 내부에는 화려함으로 가득했습니다. 멋들어진 조명 아래 벽에는 특이하게도 역대 governor들 아내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었어요. 번쩍번쩍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한 손에는 접시 다른 한 손에는 와인잔을 들고 여기저기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구요. 이런 분위기일줄 알았으면 옷 쫌 제대로 입는건데 싶어 어찌나 아쉽던지요. 건물 한 귀퉁이에선 Missouri governor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길래 주저하지 않고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공짜로 집에 발송해준다기에.,) 선생님께선 만나는 분들마다 제 소개를 해주셨는데 교환학생이라고만 하면 다들 표정이 좋아지셨어요.(갑자기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과 함께) governor 아저씨와 사진을 찍을때 그분도 교환학생이라고 하니 방문해줘서 고맙다며 악수까지 해주시더라구요. 새삼 자랑스러웠지요.^^ 건물 내에선 개인 사진기로는 촬영이 금지돼 있어서 몰래 한 번 찍어보려 했는데 곳곳에 서 있는 웨이터들이 거의 감독관 수준이어서 하나도 못찍었습니다.





↑ Legislator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었던 Governor Mention

Governor mention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나와서 Betsy를 만나 Columbia mall에서 이름만으로도 설레이는 크리스마스 쇼핑을 갔습니다. 저는 호스트 할머니 할아버지의 선물만 살 것이라 굳게 마음 먹었지만 당연히 mall에 들어서고 5분도 안돼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정말 너무 좋았던 것은 그 mall안에서 한국 사람을 5명도 넘게 봤다는 겁니다. Columbia에 대학교가 있는 곳이어서 외국인을 많이 볼 수 있었거든요. 동양인처럼 생긴 사람이면 무조건 가서 말을 걸어봤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인이었어요. 아 진짜 어찌나 반가운지 “동포여 반갑습니다!!!”하고 한 번 안아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집 근처에 있는 Chinese restaurant에서 볶음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중국인들조차 정겹게 느껴지더라구요. 그 날 밤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들 거실에 모여 영화 트로이를 봤습니다. 요즘 미국 연예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제니퍼와 안젤리나 그리고 브레드피트의 삼각관계 이야기가 판을 치는데 브레드피트는 인물만큼 학벌도 좋은 사람이었어요. Missouri대학교에서도 알아주는 Journalism을 전공했대요. 그 브레드 피트가 Missouri의 Springfield 출신이라네요 글쎄. Springfield는 저희 집에서 3시간거리에 있는 곳으로 지금 브레드 피트의 부모님은 아직 그곳에 살고 계신대요. 갑자기 Missouri가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구요.





↑ Betsy, Meddie, Legerwood 선생님과의 최후의 만찬

다음 날 아침엔 다들 늦잠을 잤어요. 일어나자마자 Legerwood선생님의 Mexican spicy chiken 요리를 먹고 짐을 챙겼습니다. 아끼던 애완견이 병에 들어 생사를 오가고 있는데도 끝까지 친절하고 밝게 대해준 Betsy에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작별은 아쉽지요. Betsy의 “즐거웠다면 고맙겠어. 다시 만나겠지? 잘 지내.”라는 꽂히는 마지막 인사로 예쁜 Betsy의 집을 나와 집에 오는 길 Missouri 주 의회 의사당에 들렸습니다.





↑ Missouri capitol

요즘 대부분의 capitol은 현대식으로 지어져 멋이 없는데 Missouri 주의 capitol은 아름다운 고대양식 건축물로 유명하대요. 총 4층의 웅장한 모습의 내부에는 겉모습보다도 훨씬 감동적이었습니다. 건물 문을 열고 열 걸음정도 걸어 들어가 끝이 없을 듯이 높은 천장을 들여다보니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우아하게 빛이 세어 나왔고 고개를 내리고 양 옆을 살피니 왼편과 오른편 각각 상원과 하원으로 이름 붙여져 나뉘어진 두 길이 보였습니다. 저희가 방문한 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의원 아자씨 한 분 만나진 못했지만 많은 lagislator 가족들을 둔 선생님께선 관광 가이드 수준이셨어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보여주시려 노력하시는 모습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 넓디 넓은 곳을 샅샅이 돌아다녔습니다. 벽에 붙어 있는 사진, 복도에 서 있는 동상 한 명 한 명 재밌게 설명해주셨고 출입금지 지역까지 몰래 들어가는 길을 찾아 들어가 봤습니다. 그 곳이 바로 Governor라는 글자가 문에 박혀있는 의원 모두의 회의실이었는데 영화 ‘금발이 너무해2’에서 봤던 그 곳에 몰래 들어가 불법으로 사진도 찍었습니다. 2층의 Senate 의원실 복도를 걸어가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긴 직위소개가 붙어있는 방 문 앞에 멈췄는데 그 곳이 선생님 오빠가 일하시는 방이라고 하시며 항상 누구보다 열심히 남을 위해 사시는 분이시라 자랑스럽다고 거듭 말씀하셨어요. 정말 넓은 건물이었지만 의원실이 그리 많지 않아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알고 보니 민주당원들은 모조리 basement에서 일하신데요. 지금 아주아주 건강히 활동 하시는 부시 아저씨가 Republican이니까 말이죠.





↑ 멋들어진 capitol 실내 사진. 세 번째 사진이 불법으로 출입하여 불법으로 찍은 그 사진입니다.

구석구석 다니며 다 제 카메라에 담고는 caitol을 나와 다시 고속도로에 올랐고 진눈개비 아래 또다시 3시간반을 달려 사랑스러운 소들의 고향 Alton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은 피곤하실텐데도 또 많은 얘기들을 해주셨어요. 여러 town을 거쳐 오면서 각 동네에 대해 아시는대로 다 소개해주셨고 지나며 보이는 여러 광경들에 대해 되도록이면 많이 이야기해주시려 하셨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죄송할 정도였어요. Legerwood 선생님댁은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어서 그 곳에서 하룻밤을 더 지내고 다음날 선생님과 함께 등교를 했습니다. 정말 너무 고마운 분이시지요. 누가 이 감사함을 어떻게 보답해야하는지 좀 가르쳐주세요. 하나님은 버라이어티한 방면으로 사람 힘들게 하는 호스트 가족대신 저를 생각해주는 여러 고마운 사람들을 곁에 두어 주셨어요.





↑ Missouri capitol 앞 Thomas Jefferson 아저씨 동상 옆에서.

진짜 귀엽네요.

시간은 뒤도 안돌아보고 바쁘게 흐르더니 요즘엔 사람들이 “Merry Christmas and Season's Greeting!(새해 복 많이 받아유)” 이라고 인사를 하네요. 이번 크리스마스에 정말 많은 행사가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다음 글에서 또 열심히 들려드릴겁니다. 다음주 수요일이면 짧은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이제 2006년이랍니다. 한국에 계신 여러분 모두 크리스마스엔 가족들이랑 과일을 깎아 먹으며 ‘나홀로집에 시리즈’를 시청하시길 바랄게요. 그건 한국에 계신 분들의 특권이니까요..^^ 다들 일 년에 한 번 하는 방 정리도 깨끗이 하시고 주변사람들도 둘러 보시면서 따뜻하고 여유로운 연말 보내세요. 생애 가장 멋진 한 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추천583 추천하기

37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전글 [12기 - Michigan이정은/글4]
다음글 [12기 - Minnesota전준용/글5]

하니에듀는 여러분의 보다 큰 꿈을 응원합니다.

상담신청   1666-6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