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 ENGLISH | 모바일

현지 통신원글

Live stories from Haniedu students  


제목[8기-양희승#1]Mercy(CA)
작성자양희승 등록일2007.10.23 13:46 조회수5,135

 

 

[8기 – 양희승/글1] Red Bluff [CA]

저는 Red Bluff, California에 있는 Mercy High School에 11학년으로 재학중인 양희승이라고 합니다.그간 출국날8월 22일부터 9월말까지 저에게 있던 일을 이야기할려합니다.

 

8월 22일- 무지 긴 하루
아침8시쯤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집에서 10시에 떠나 엄마차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11시30분쯤 도착했다. 아마 2시에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했던것같다.(잘 기억이안난다. 한번에 쓸려니까) 공항에서 여권보여주고 들어가는 문을 통과하기 전에 왠지 한식을 먹어야 할것같다는 생각이 들어 1만원짜리정도되는 국밥을 먹었다. 국밥이눼쩝?육개장이였는지 하여튼 무슨 국물이 있고 밑반찬에 밥까지 주는 식사를 사먹었다. 무슨 국밥이 이리도 비싼지 맛도 그저그러면서…잠시 이런 생각이 들다가 밥을 다 먹고, 엄마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공항 좀더 깊숙한대로 들어갔다.
여권에 도장찍는곳을 나오니, 면세점 물품이 눈에 들어왔다. 이때 100달러정도 있었던것 같다. 그냥 다 무시하고 가는데 가방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새가방을 사야할것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왔다.그러더니 나도 모르게 가방가게에 가서 가방을 사고 말았다. 가방은 꽤 컸는데 면세점직원이 유학생들이 많이 사가는 것이라고 해서 다른거 다 제끼고 그걸 샀다. 그리고 내 게이트 번호 찾아가서 게이트 옆 벤치에 앉아 있더니 직원들이 일반석 승객들 탑승하라고 소리쳤다.
비행기는 유나이티드 에얼라인즈 편이였다. 한 20분뒤에 비행기는 이륙하고 기내식을 먹고나니 눈이 감겼다. 그리고 눈을 뜨니까 비행기 안이 어두웠다. 잘려고 하는데 잠이 안왔다. 그래서 스파이더맨3를 3번이나 봤다. 지루했다.이래저래 빈둥거리다보니 어느새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아 왠지 모르게 긴장감 반에
머릿속에서 미국도 왔으니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 반이 같이느껴졌다.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렸다. 아직도 내가 미국에 있다는게 실감이 전혀 안났다. 배가 고팠는데 왠지 음식점들 음식이 안 땡겼다. 그냥 공항 돌아다니다가 버거킹가서 햄버거세트를 시켜먹었다. 햄버거는 친구한테 들은게 있어서 한국에서 파는 햄버거랑 맛이 다를거라고는 알고있었지만  고기맛,치즈맛,양상추맛외에 진짜 아무 맛도 안났다. 햄버거를 먹고 새크라멘토 공항으로 가는 국내선을 탔다. 세크라멘토가 나의 최종 항공 목적지였다. 세크라멘토 도착. 공항 출구쪽으로 가니 홈스테이 가족들이Welcome Hee Seung Yang이라고 적힌 텔레비만한 마분지를 들고 서있었다. 처음이여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Hi, I am Hee Seung.Haha’이랬다. 그리고 가족들 얼굴을 보며 이름을 알아맞추기에 바빴다. 처음봤는데 사진을 찍자고 요구했다. 사진도 찍고나니 짐이 나왔다.짐을 들고 공항 밖으로 나와서 호스트 가족의 차에 탔다. Chevravolet 미니밴 차였다.
아저씨이름은 Jess Dobson이고 나이가 40대초반에 기계공이다.독일인과 오클랜드인 사이에 태어났다고 한다.아줌마 이름은 Shoshana Dobson이고 아일랜드인인데 영국이 아일랜드를 못살게 굴자,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이민왔다고 한다.나이는 아저씨랑 비슷했다. 자식들은 세명이였는데 만16살의 Collette란 여자아이,만 15살의 Liam이란 남자아이, 만9살의 Selena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차에타고 가는데 갑자기 기분이 묘했다. 처음느끼는 기분이였다. 아무 생각이 들지도 않고 뭔가 평온한것같으면서도 약간의 불안감이 도는 신기한 느낌이였다.
한참 미국 실감이 안나 지나가는 차들을 쳐다보는 사이, 아저씨가 차 방향을 틀었다. 햄버거가게 앞에 내렸다. 갑자기 한겨레교육과미래에서 줬던 책 대목중 호스트가족과 외식을 하면 호스트가족이 사줄꺼라고 기대하지말것이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그래서 아저씨한테 나 공짜로 사주는거냐고 물어봤다. 그러더니 아저씨가 이상한 눈치로 날 쳐다보면서 당연히 공짜로 사주는거 아니냐 이랬다.
햄버거를 먹고 다시 차타고 가니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홈스테이가정이 있는곳은 Corning인데, 학교에서 차타고 20분정도거리에 떨어져있었다. 집은 호스트가족이 이메일로 보낸준 사진 속의 집 모습은 실제로도 똑같았지만, 내가 상상했던 집구조와 집환경,풍경과는 좀 달랐다. 나는 내가 쓰게될방의 사진에 십자가를 2개나 보고 호스트집은 검소하고 독실한 집안일꺼라고 여겨 약간 긴장을 했다. 근데 막상보니 그냥 평범한 집이였다. 짐은 한쪽 구석에 땡겨놓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으니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밤이였다. 부엌에 나가서 아줌마를 만났다.(아줌마는 공항에 안왔었다.) 아줌마가 먼저 나한테 ‘Hello’라고 말을 걸었다. 이런저런 내 소개를 아줌마한테 한후, 저녁을 먹고 또 침대로 갔다.집시계를 보니 8월22일이였다. 정말 긴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8월23일 첫 등교날
아침 6시 아줌마가 날 깨웠다. 아침은 예상대로 콘프레이크였다. 옷을 입고 있는데 Collette가 소리쳤다. 등교할때는 카라가 있는 티셔츠를 입어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카라가 달린 티셔츠로 바꿔 입었다. 차를타고 Corning을 떠나 학교가 있는 Red Bluff에 도착했다. 아줌마는 초등학교교사이시다, 그래서 아줌마는 막내 Selena와 함께 Red Bluff에 있는 카톨릭계 초등학교에 내리시고 그 다음부터는 Collette가 아줌마 대신 차를 몰아 우리학교로 향하였다. 학교에 들어서니 애들이 ‘This is our school.’이라고 하면서 내 눈에 들어온 하얀색 건물. 차에 내려 가방을 들고 학교에 들어가려는데 정말 오랜만에 느껴지는 긴장감이 들었다. 아마 완전히 다른 새환경을 갖게될거라는 생각에서였다. Liam은 신입생이여서 첫 고등학교 등교날을 갖는 참이였다. 그래서 Liam도 자기 역시 좀 긴장이 된다고 나한테 말했다. 학교 문안에 들어가자 다음 들어간곳은 교장실이였는데, 교장선생님이 무슨 과목을 선택할것인지 물었다. 그래서 나는 Physics, Social Justice(이건 우리학교 전교생이 들어야할 필수과목이다), US History(이건 미국고등학생이 들어야할 필수과목이라고 교장선생님이 말해주셨다.), Spanish, Algebra2, English Literature Composition11, Chemistry를 하겠다고 했다.
1교시는 Physics였는데, 뭘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교장실 앞 소파에 앉아 있다가 교실 앞에 보인건 한국학생이였다. 창원에서 온 애였다. 애는 이미 작년에 공립으로 교환학생 1년을 한 학생이였는데, Arkansas주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해외에서 만나면 한국인들끼리 하는 첫인사말이 끝난뒤, 우린 교회로 향하였다. 교회는 1달에 한번씩 학교에서 가는것이였다. 교회에 들어서니 온통 하얀 피부의 백인들로 대부분 꽉차있었고,가끔 가다가 보이는 약간 검은 피부의 멕시코인들,그리고 나하고 한국학생만 살색피부의 동양인이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백인이 많은 장소에 온건 처음인것 같았다.점심시간,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한국학생과 만나서 뒷마당 같은데서 먹었다. 나는 처음 다니는 미국학교여서 눈앞에 있는 새로운 현실들을 바라보느라 머리가 정신없던 차에 자꾸 한국애가 학교가 너무 작다 학교가 너무 작다 이렇는 것이다. 이런 저런 애기와 함께 점심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아직 3시반이였는데 무지 졸렸다. 눈도 침침하면서 서서히 아파왔다. 대충 몸이 자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는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한국은 아마 아침5시였던것같다. 아 이때쯤이면 슬슬 잠에 취해있을때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차를 타고 집에 어느새 도착하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으니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밤 8시, 방문을 나가서 부엌에서 각자할일을 하는 가족들에게 ‘Good Evening’이라 하였다. 가족들은 내 몫을 저녁을 남겨두었다. 좀 고마웠다,진심으로. 아무말없이 밥을 먹고 자려는데, 잠이 안온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다가 잠이 들었을때가 밤 12시였다. 10시에 침대에 누웠는데 2시간동안 불면상태였었다. 그리고 일어나니 갑자기 무지 피곤했다. 조금이라도 늦게 자면 몸이 시차때문에 피곤해진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있던 일을 애기했다. 호스트엄마에게.그리고 앞으로는 당분간 낮잠을 자지말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8월24일 이후
참 이래저래 적응하느라 바쁜 날들이였다. 무엇보다 시차적응이 조금 힘들었다. 집에 올때면 잠이 와서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또 새학교라 책도 받아야했고 새로운 동네라 헬스클럽등록도 하느라 바뻣다.(한국에 있을때는 헬스 안다녔는데 한국애가 할것도 없는데 헬스다니자 해서 다니게 되었다.)아참 그런데 책을 받을때는 한국(나는 한국학교를 중2때 까지만 다녔다.그래서 지금은 한국학교가 어떤지 잘모른다.)에선 교과서를 교실까지 배달해줬는데 우리학교는 주립대학교에 가서 책을 빌려야 했다. 근데 더 신기한건 교과서를 빌리는 건데 비용이 많이 비쌌다.교과서를 1학년 내 대여하는 비용은 270달러(26만원에서 27만원 사이)였다.게다가 교과서 대부분은 백과사전만큼 크고 두꺼웠다.그래서 숙제를 할때는 장바구니보다 조금 더 큰 가방안에 백과사전만한 책을 두세권씩 넣고 다녔다.그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9월 16일 멕시코 독립기념일
아침에 일어나자, 호스트 엄마가 Willows로 가자고 했다. 오늘은 nanny를 만나는날이라고 하였다.(Nanny는 호스트남동생말에 의하면 아일랜드 혹은 영국에서 외할머니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Willows는 Corning에서 차타고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데, Corning만한 동네라고 호스트엄마가 말해줬다.
(Corning은 정말 작은 town이다.) 차를 타고 Willows로 가니 우리가 도착한 곳은 멕시코인들이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고 있는 곳이였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트럼펫같은 악기소리와,기타소리,알아들을수없는 언어와 함께 그곳은 무척이나 붐비는 곳이였다.주차장에 내리고 식당쪽으로 향하니 nanny와 papa가 (Papa는 할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다.하지만 여기서 papa는 nanny의 남편이다.).보였다. Nanny와 papa는 이전에도 만난적이 있어서  그냥 간단하게 ‘Hi’라고 하였다.
그 다음 우리는 식당으로 다시 향했다. 식당안에 들어서니 식권을 판매하는 카운터가 보이고 한 300명쯤 되어 보이는 멕시코 인들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식당 안은 호스트 가족과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멕시코인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식당 문밖에 서있는 나를 다들 자꾸 힐끔힐끔 쳐다봤다, 부담스럽게시리.
식당엔 멕시코음식 밖에 안 팔아서 멕시코 음식을 먹게되었다. 음식은 다 괜찮았는데 약간 좀 거슬리는 점들이 있었다.사람들이 자기들이 먹기 싫어하는 음식을 나한테 주는 눈치였다. 나 역시 별로 받아먹기는 싫은 마음도 좀 있었지만, 한번도 안 먹어본 음식들이라서  그냥 주는대로 다 받아먹었다. 또 하나는 밥을 먹는데, 식당 후문 앞쪽에 서서 악사들이 기타를 치고,나팔을 불고,바이올린을 키며 연주를  하고 또 스페인어로 노래까지 부르니, 옆사람과 큰소리로 말을 해야 겨우 말귀를 알아들을 정도로 아주 시끄러웠다. 특히나 나팔소리가 울려퍼질때마다, 밥먹기에 아주 거슬렸었다.근데 더 신기한거는 멕시코인들은 별로 신경쓰지않는 얼굴을 하고, 자기들끼리 스페인어로 애기를 하며 밥을 먹는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도 밥먹을 때 안 건드린다는데, 여기는 사람이 밥을 먹어도 신경을 안 쓰는것같았다.
배불러진 배를 쓰다듬으며, 식당을 나가면서 멕시코인들은 아주 신기하다고 호스트엄마에게 애기를 하니, 호스트 엄마는 오늘은 독립기념일이라서 모든 멕시코인들이 기뻐하는 날이라 사람이 옆에서 밥먹는데도 신경 안쓰고 노래를 부르며 축하를 하는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나니 내가 이상한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nanny의 차에 올라탔다. 차를 타고 nanny의 집을 잠시 방문 한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갑자기 내가 오늘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느껴졌다. 왜냐면, 내가100살까지 산다고 해도, 다신 멕시코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곳을 갈 일이 없을꺼라고 생각해서 였다. 그리고 한국에 있을 때 멕시코 독립기념일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멕시코 독립기념일에 대해서 뭔가를 좀 알게 되어서도였다..(축하장소에서 호스트 엄마가 멕시코 독립기념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9월 28일 Lassen National Park에서의 풋볼경기
학교가 끝난뒤, 2시반에 집을 떠나 나와 호스트가족이 향한 곳은 Chester High School이였다. Chester High School은 Lassen National Park에 있는 고등학교이다.Lassen National Park는 Corning에서 동쪽으로 가면 있는 국립공원이라고 호스트 엄마가 말해줬다.
차를 타고 산길을 올라가니 출발한 지 2시간 뒤쯤에 Chester High School에 도착하였다. 나와 호스트 가족들이 Chester High School에 간 이유는, 우리학교 Mercy High School이 다른 학교와 경기를 갖게 되는데, 내 호스트 남동생,Liam이 선수로 뛰기 때문이여서였다.
우리학교 풋볼팀은 2개의 팀으로 나눠져있다. JB Varsity와 그냥 Varsity가 있는데 JB Varsity는 Freshman과 Sophomore(9학년,10학년)으로 구성되어 있고, Varsity는 대부분 Junior 와 Senior(11학년,12학년)으로 구성되어 있다.자기 학년에 비해 좀 나이가 많거나 덩치가 크고 힘이 센 freshman과 sophomore도 Varsity 팀선수로 뛸 수 있었다.하지만 다른 freshman처럼 Liam은 힘이 세거나 나이가 많은 아이가 아니여서 JB Varsity팀에 속해있었다.
우리가 Chester High School에 도착했을 때는 4시30분.오늘은 JB Varsity와 Varsity 경기가 연달아 이어지는 날이였다. JB Varsity경기는 5시쯤 시작할 예정이였다. Lassen 국립공원은 9월에도 많이 춥다고 해서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옷을 두껍게 입고 왔다. 나는 캘리포니아가 추우면 한국보다 춥겠냐는 생각으로 긴팔하나에 후두티하나를 입고 갔다. 나의 생각은 틀렸었다.
5시쯤,경기가 시작됬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비가 내렸다. 당황한 나와 호스트 엄마는 우산을 쓰고 우산 밑에서 비를 피했다.그리고 너무 추운 나는 게임을 보지 못하고 후에 호스트 아빠가 가져온 물이 스며들지않는 비닐 안에 들어가 추위를 최대한 피할려고 애를 썼다. 처음에는 비가 억수로 오는줄 알았다.그런데 나중에 비닐밖으로 나와 본것은 우박이였다. 나보다 더 존경스러운 사람들은 풋볼경기선수들이였다. 반팔만 입고 젖은 몸으로 경기를 아주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었다.너무 추운 나는 차를 들락날락거리며 경기를 봤다.완전 한국의 겨울날씨였다. Liam의 경기가 끝나자, 너무 추운 바로 곧 이어 나오는 Varsity 경기는 보지 않기로 하고, 집으로 바로 출발했다.Chester High School이 있는 동네를 빠져나와 도로로 들어오자, 200년정도 묵은 아주 거대한 나무들이 눈에 덮혀져있는것만 보였다. 마치 크리스마스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겨울날같았다.
참 신기했다.지금은 9월인데 여기는 우박이 눈처럼 마구 내리고 한국겨울날씨만큼 추웠다.태어나서 9월에 겨울풍경을 본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였다.그리고 이 날 이후로 나는 절대 California가 내가 생각한 좋은 날씨들만 있는게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9월29일Hail Ireland
오늘은 특별한날이였지만 오늘에 대한 글은 짧다.호스트 외할머니(nanny)와 호스트 외할아버지(papa)가 아침일찍 집을 잠시 방문했다. 그런데 호스트 외할머니(nanny)가 나하고 Liam에게 아무이유없이 5달러씩 손에 쥐어줬다.Liam에게 왜 nanny가 돈을 줬냐고 물었더니, 아일랜드 사람들은 형제자매의 자식들을 만나면 용돈을 주는 습성이 있다고 했다.이건 꼭 마치 우리나라사람들과 같은 습성이였다.그래서 나도 Liam에게 우리나라사람들도 똑같다고 애기해줬다.그랬더니 Liam이 돈을 어른들에게 받는것은 좋다고 실실웃어댔다.나도 돈을 주는 어르신들은 멋쟁이라고 킥킥거렸다.5달러를 받은 기쁨에 호스트 엄마에게 Hail Ireland(아일랜드 만세)라고 큰소리를 외쳤다.그리고 오늘 5달러를 nanny에게 받은 이야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호스트 엄마는 웃으면서 나에게 더 신기한 애기를 해줬다.아일랜드 부모들도 친척들에게 받은 용돈을 자신들의 생활비로 종종 쓴다고.우리나라만 돈을 주는 습성이 있는줄 알았더니 지구 반대편 아일랜드에서도 그러한 습성이 있다는 사실은 하루종일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9월30일San Francisco
새벽4시30분, 아침일찍 일어나 샌프란시스코를 갔다. 샌프란시스코를 갈 때는 Bill의 차를 탔는데(Bill은 호스트 아빠의 형제) 차 안에 들어가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1시간 뒤쯤 호스트 아빠가 나를 깨워 일어나 아침을 먹고나니 잠이 덜 왔지만 다시 잠을 자려고 애를 썼다. 결국 잠이 들어, 다시 눈을 뜨니 샌프란시스코에 와있었다. 도시에 오니 분위기와 느낌이 달랐다. 길거리의 도시사람들의 옷차림, 고층건물들, 세련된 건물들, 아시아인들. 샌프란시스코에는 아시아인이 많아 보였다. 차를 타고 거리를 둘러보거나 옆차를 보나 아시안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어릴 때도 한번 온 샌프란시스코였지만, 그 때 내 눈에 보인 샌프란시스코와 방금 막 신선하게 들어온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은 너무 달랐다.마치 지금은 내가 더 샌프란시스코를 자세히 관찰한다는 느낌이랄까나.
우리가 샌프란시스코로 와서 처음 간 곳은 Pier 39이였다.(우린 샌프란시스코를 풋볼경기를 보기 위해 왔다.) 풋볼경기는 오후에 시작하여서 아침시간을 때우기 위해 Pier 39에 왔다. 이 때 아침 8시쯤이였다.
Pier 39쪽 거리를 걸어다니며 보니 샌프란시스코가 관광의 도시 같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거리를 돌아다니는 유럽인들, 일본인들, 한국사람들, 그리고 다른 주에서 온 미국인방문객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선물가게들도 많았다.
샌프란시스코는 왠지 모르게 세련되어 보였다. 길거리엔 스프레이낙서(graffito)가 많았으며, 항구도시여서 항구쪽엔 커다란 보트들도 많았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시내를 가로지르며 움직이는 전동차같은 열차였다.(이름을 정확히 모르겠다.) 그런데 그 열차를 들여다보면 카메라를 목에 매달고 있는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였다. 아니 전부다가 관광객들이였다. 호스트 동생말로는 열차 바깥쪽이 열려있어서 열차에서 떨어져 나갈 염려가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한다.
Pier 39 초콜릿 가게에서 쇼핑을 한뒤, 우리가 다음 차타고 간 곳은 일본 상점들이 모여있는 mall이였다. mall안은 바깥에서 보기엔 아주 작아보였다. 막상 안에 들어가니 꽤나 넓었다. mall안에는 온통 일본어로 써져있는 일본가게들뿐이였다.그 mall안은 미국같지가 않았다.
mall안을 나가 fillmore street로 들어가니 한국상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상점들 중 나는 한국슈퍼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아저씨는 친철히 나를 대해주셨고 나는 김,김발하고 과자들을 사고 우리 호스트 아빠는 홈런볼, 그리고 아줌마를 위해 쿠크다스를 샀다.(저번에 내가 홈런볼을 호스트 아빠에게 줬는데, 호스트 아빠가 좋아했다.아줌마는 내가 준 모카커피맛 쿠크다스를 엄청 좋아했다.) 
Fillmore street에서 볼일을 다 보고 우리가 다음 간 곳은 풋볼경기장이였다. 경기장 십마일 밖부터 San Francisco 49er(NFL리그 캘리포니아주 풋볼경기팀)티셔츠나 Seattle Seahawks(NFL리그 워싱턴주 풋볼경기팀)티셔츠를 입고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오늘 경기는 San Francisco 49er vs Seattle Seahawks이며 San Francisco 49er 홈경기이다. 49er티셔츠는 빨강색이였으며 Seahawks티셔츠는 청색이였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처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일줄 알았는데, 호스트 아빠가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이 종종 경기와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파티를 즐기러 온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차를 주차한 곳에서 경기장까지는 바비큐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버린 오물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경기장 주위는 매우 혼잡했다.
경기장에 표를 검사받고 들어가니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상대편팬들을 야유하고 있었다. San Francisco 49er팬들은 Seattle Seahawks팬들을 볼 때 마다 ‘Seattle Sucks(시애틀 구려).’이라고 하며 야유를 하고, Seattle Seahawks 팬들을 볼 때 마다 ‘Loser,49er(패배자,49er)’라고 부르며 야유를 했다. 이 광경은 경기장입구를 들어가서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패거리로 몰려와 야유를 할 때도 있었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49er 홈경기여서, 49er가 조금만 잘해도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Seahawks가 정말 잘하는 건지 아니면 49er가 정말 못하는 건지 경기는 Seahawks가 이끌어갔다. 49er는 점수도 못 따고 계속 지기만 했다.
Quarter 3정도가 되니 49er도 분발했는지 조금씩 점수를 따기 시작했다. 관중객들도 처음부터 살짝 격렬해진것 같았다.
갑자기 내 자리 쪽의 관중객들의 시선이 다른 관중객석으로 쏠렸다. 어떤 남자 두명이 얼굴을 때리며 싸우고 있었다. 경찰이 와서 말리고 두 명은 체포되어 경기장을 나갔다.
얼마 안 있어서 ‘삑’갑자기 경기를 멈추는 소리가 들리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경기가 아니라 다른데로 돌아갔다. 어떤 남자가 관중석에서 경기장으로 뛰어내려 선수들쪽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경기장에 있던 경찰관들이 쫓아가 그 남자를 체포하고 그 남자가 경찰들한테 끌려가자 경기장의 모든 관중객들이 그 남자가 경기장을 나갈때까지 환호를 했다.
알고보니 미국 풋볼경기장 규칙은 엄격했다. 호스트 아빠가 사람들이나 선수들한테 음식이나 쓰레기를 던지거나, 경기장 밖으로 뛰어나가거나, 또는 장내에 폭죽을 터뜨리면 불법이어서 잡히면 감옥살이를 한다고 한다.
Quarter4가 되자 관중객들이 줄지어 퇴장했다. 관중석의 반이 빈 상태 였다.
경기가 끝나기 2분 전 나와 호스트 가족들은 Seattle Seahawks 선수들이 퇴장하는 곳쪽으로 걸어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경기는 20:6으로 Seattle Seahawks가 이겼다.
경기가 끝나자 Seattle Seahawks 선수들이 퇴장하기 시작했다. 경기장 위의 관중석의 Seatte Seahawks 팬들은 환호하며 승자 Seahawks 선수들을 맞이했다.
Seahawks 선수들을 승리를 환호를 하며 경기장 밖으로 나가고, 어떤 선수들은 아대같은 것(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을 관중석의 팬들에게 환호의 답례로 던졌다.
Seahawks 선수들이 다 퇴장하자 우리도 경기장 밖으로 나가 주차장쪽으로 향했다.
경기장을 완전히 빠져나가 Corning으로 가는 도로까지는 차들로 붐볐다.
오늘은 아주 재밌는 날이였다.

 

샌프란시스코 pier 39에서

풋볼경기사진 빨강색 유니폼은 san francisco 49er, 하얀색은 seattle seahawks

양희승님의 하니에듀 참여 활동

추천467 추천하기

5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전글 [8기-양희승#2]Mercy(CA)
다음글 캐나다 온타리오 9기 김정훈의글- 마지막

하니에듀는 여러분의 보다 큰 꿈을 응원합니다.

상담신청   1666-6950